평화롭게 그려지곤 하는 선사시대지만, 크로마뇽인 사이에서도 분쟁과 전투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글에서는 고고학적 증거와 인류학적 분석을 통해 크로마뇽인의 갈등 양상과 그 사회적 의미를 탐구한다.
평화만 있었던 시대는 아니었다
구석기시대는 종종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인간의 원초적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수렵 채집 사회의 불안정한 자원 분포, 생존을 위한 경쟁, 영역 확보 등은 분쟁의 씨앗이 되었으며, 크로마뇽인 역시 예외는 아니었을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크로마뇽인 유골 중 일부에서 날카로운 도구에 의해 생긴 것으로 보이는 외상 흔적, 두개골의 함몰, 골절 흔적 등을 확인했다. 물론 이 중 상당수는 사고나 사냥 중 부상일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유골들에서 나타나는 명확한 방어 상처와 공격 흔적, 심지어 등 뒤에서 가해진 손상까지 발견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충돌’ 가능성이 제기된다. 프랑스의 한 동굴 유적에서는 동일한 연령대의 성인 남성 유골이 집중되어 있었고, 이들은 모두 심각한 외상을 입고 사망한 상태였다. 이는 우연보다는 집단적 충돌의 결과일 수 있으며, 선사시대 초기의 전투 또는 집단 간 분쟁을 상상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이와 같은 물리적 충돌은 단순한 폭력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간이 타인과의 갈등을 경험하고, 그에 대응하며 사회적 규칙을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크로마뇽인의 전투 흔적은 인류가 단순히 평화로운 동물적 존재가 아닌, 복잡한 사회적 유기체였다는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
고고학적 증거로 본 갈등의 양상
크로마뇽인 시대의 분쟁은 오늘날처럼 조직적이고 무기가 발달한 전쟁은 아니었지만, 그 나름의 전투 양상과 사회적 갈등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유적에서 출토된 유골들을 보면, 날카로운 석기나 창끝에 의한 손상 흔적이 다수 발견된다. 특히 뼈에 남은 절단 흔적은 의도적인 공격을 시사하는 경우가 있다. 동일 집단 내의 갈등과 외부 집단과의 충돌은 모두 고려된다. 내부 분쟁의 흔적은 보통 개별적인 외상이나 단독 유골에서 확인되며, 외부 집단 간 충돌은 동일 지점에서 여러 명의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후자의 경우, 공간 배치나 외상 부위의 일치성을 통해 ‘조직적인 공격’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무기나 방어 도구의 진화도 분쟁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크로마뇽인은 석기 외에도 목창, 날붙이, 가죽 방패와 유사한 구조물을 제작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일부 유물은 동물 사냥이 아닌 인간과의 충돌을 염두에 둔 구조로 분석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갈등이 단지 폭력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례 방식에서 확인되는 공동 매장, 외상 흔적이 있는 시신에 대한 정성 어린 처리, 상처를 입은 이들이 장기간 생존한 흔적은 ‘치유’와 ‘관계 회복’의 문화도 함께 존재했음을 암시한다. 이는 단순히 싸움이 아니라, 갈등을 조율하고 복구하는 방식까지 내재된 사회였음을 보여준다. 즉, 크로마뇽인의 분쟁은 원시적인 충돌이면서도 인간다운 감정, 상호작용, 규범의 형성을 동반한 복합적인 사건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갈등을 통해 사회를 배우다
크로마뇽인의 삶 속에 분쟁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류가 본래부터 갈등을 경험해 온 존재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 갈등이 단지 파괴로만 귀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상처를 입은 이들을 보살피고, 죽은 자를 매장하며, 공동체 내 갈등을 수습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구성하고 있는 사회 질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대 인류에게도 관계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고,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규칙을 세워갔다. 사회는 평화 속에서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경험을 어떻게 소화하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더 단단해진다. 크로마뇽인의 분쟁 흔적은 그들이 단지 폭력적 존재가 아닌, 관계를 수습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려 했던 인간이라는 증거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수만 년 전 우리의 조상들이 그러했듯, 대화를 통해 이해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야말로 진정한 인간 사회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크로마뇽인의 전투 흔적은 우리에게 경고가 아닌, 오히려 관계 회복의 원형을 상기시키는 메시지다. 과거는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그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미래는 훨씬 인간다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