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류인 크로마뇽인은 단순한 생존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 차이를 넘어 역할을 나누고 협업하며 공동체를 유지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고고학적 증거와 인류학적 추정을 바탕으로, 크로마뇽 사회에서의 성별 역할 분담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조명합니다.
사냥꾼과 채집자의 경계를 넘다
구석기시대를 떠올릴 때 흔히 남성은 사냥을, 여성은 채집이나 육아를 담당했다는 이분법적 이미지를 상상하곤 합니다. 그러나 크로마뇽인의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약 4만 년 전 유럽에 등장한 현생 인류인 크로마뇽인은 복잡한 환경에 적응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갔으며, 그 과정에서 성별에 따른 고정된 역할보다는 유동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보면, 여성과 남성의 유골 모두에서 유사한 사냥 관련 도구들이 발견되며, 이는 특정 성별만이 사냥에 참여했던 것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또한 일부 어린이 무덤에서도 장신구나 도구가 함께 묻혀 있는 사례가 있어, 특정 기술이나 역할이 성별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전수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당시의 생존 환경은 매우 가혹했기에 구성원 모두가 다방면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을 것입니다. 즉, 사냥만이 생존의 핵심이 아니라, 식물 채집, 불 피우기, 음식 저장, 가죽 가공, 도구 제작, 예술 행위 등 다양한 활동들이 공동체 유지에 중요했고, 이러한 작업들은 성별과 무관하게 나누어졌습니다. 크로마뇽인의 사회는 기능 중심적 구조를 가졌으며, 생존을 위한 최선의 전략으로서 유연한 역할 분담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고고학적 유물로 본 성별 역할 분담
크로마뇽인의 성별 역할 분담에 대한 직접적인 문헌은 존재하지 않지만,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골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돌니(Dolní Věstonice) 유적에서는 여성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정교한 조각상과 함께 발견되었으며, 이는 여성 또한 예술과 상징 표현에 적극 참여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의 유적에서는 남성 유골 옆에서 바늘, 가죽 작업 도구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가죽 가공이나 봉제 작업이 여성만의 영역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추정으로 이어집니다. 심지어 일부 연구에서는 여성도 활을 쏘고 창을 던졌으며, 작고 민첩한 체형을 이용해 사냥에서 특정 전략적 역할을 맡았을 가능성도 제기합니다. 최근 페루의 구석기시대 유적에서는 여성 사냥꾼의 무덤에서 창 측과 사냥 도구들이 발견되어, ‘남성=사냥, 여성=채집’이라는 전통적 도식이 보편적이지 않았음을 강하게 시사했습니다. 이러한 정황은 크로마뇽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었을 가능성을 높입니다. 물론 출산과 수유라는 생물학적 차이는 존재했지만, 그 차이는 고정된 역할 분담이 아니라 ‘일시적 제한’ 수준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히려 크로마뇽인들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가장 적절한 사람이 역할을 수행하는 실용적 전략을 취했을 것입니다. 이는 현대의 성평등 개념과는 다르지만, 생존 중심의 효율성과 공동체 유지라는 측면에서 매우 합리적이었습니다.
선사시대에서 배우는 협력의 본질
크로마뇽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인간 사회가 본래부터 협력과 유연성에 기반해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별에 따른 분업은 존재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차별이나 위계가 아닌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남성은 사냥을, 여성은 집안을 책임졌다는 단순한 구분은 구석기 시대 현실과는 맞지 않으며, 오히려 성별에 관계없이 구성원 모두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공동체를 유지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이처럼 크로마뇽인의 사회 구조는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협업, 존중, 다양성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원시적’이라고 여기는 과거의 인간은 실은 복잡하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갔으며, 그 안에는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 역할에 대해 다시 묻고, 고정된 틀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해답은 어쩌면 아주 먼 과거, 크로마뇽인의 삶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선사시대의 흔적은 단지 박물관 속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되어줍니다.